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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작업 노트 스물네 편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노트] 작업 노트 스물네 편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art-stills/shoulderriffle.jpg)
7년 동안 남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관공서 홍보영상, 기업 매뉴얼영상, 건물 벽에 거는 미디어파사드. 400건이 넘습니다. 그러다 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72점을 만들어 그중 39점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왜 시작했는지, 만들면서 무엇을 알게 됐는지 적어두려 합니다. 자랑하려는 글은 아닙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읽으려고 쓰는 쪽에 가깝습니다.
남의 메시지를 잘 만드는 일
영상 제작은 의뢰인의 메시지를 대신 말해주는 일입니다. 이 기관이 무엇을 했는지, 이 공장이 어떤 공정을 지키는지,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걸 보기 좋게, 정확하게 옮깁니다.
잘하는 일이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남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옮기는 사람인데,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미디어파사드를 하면서 그 생각이 더 커졌습니다. 건물 벽 전체가 화면이 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거기 올라가는 건 늘 발주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큰 화면에 내 그림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물을 찍는 대신 계산하기로 했다
출발점은 청류(靑流)였습니다. 물의 흐름을 코드로 그린 작품입니다.
물을 영상으로 찍으면 그 순간 물은 고정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파도를 찍어도 재생할 때마다 똑같은 파도가 똑같이 부서집니다. 그건 물의 기록이지 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찍는 대신 계산하기로 했습니다. 화면의 입자 하나하나가 유체의 규칙을 따라 스스로 흐르게 만들면, 매 순간이 처음 일어나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부터 갈래가 셋으로 나뉘었습니다. 한글 자모를 재료로 쓴 20점, 색을 주제로 한 영류(永流) 초기 연작 28점, 그리고 물결을 다룬 흑백 연작 24점입니다.
열하루 동안 스물네 점
흑백 물결 연작은 2026년 6월 26일에 시작해 7월 6일에 끝났습니다. 열하루 동안 스물네 점입니다.
계획하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끝내면 다음이 보였고, 그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서두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하나 끝낼 때마다 작업 노트를 남깁니다.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한 문단씩 적어두는 습관입니다. 얼마 전 그 노트 스물네 편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좀 놀랐습니다. 따로따로 쓴 글인데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면으로 막아 세우는 방패보다, 먼저 어깨를 내어주고 들어 올려 힘의 방향을 바꾸는 보호의 몸짓에 가까웠다" — 어깨여울
"단단한 한 덩어리로 막는 마음보다, 얇은 결을 여러 겹 세워 먼저 받아 내고 조금씩 접어 흘려 보내는 마음에 가까웠다" — 갈피결
"막아 세우기보다 소매처럼 먼저 감싸 돌리고, 안쪽에 닿기 전 이미 힘을 풀어 주려는" — 휘감턱
"여러 겹의 얕은 등으로 먼저 충격을 나눠 받고 가장자리로 조금씩 풀어 보내는" — 포갯등
막지 않고 받아서 흘려보낸다. 다른 작품, 다른 형태인데 하는 말이 같았습니다.
의도한 게 아닙니다. 매번 새로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결과가 그랬습니다.
그게 제가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스튜디오를 7년 운영했습니다. 매년 새로운 기회가 오고 동시에 어려운 일도 왔습니다. 정면으로 부딪쳐 이긴 적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은 일단 받아내고, 방향을 조금 틀고, 흘려보내며 버텼습니다.
아내와 산책하다 신천에 박힌 돌 세 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살이 돌을 때리는 게 아니라 돌을 감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제 상황 같아서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자꾸 그 이야기를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그릴지 정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셈입니다.
물결 연작을 흑백으로 만든 이유
초기 영류 연작은 색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무지개 띠가 겹치고 풀리는 작업들입니다. 그런데 물결 연작에서는 색을 전부 뺐습니다.
절제하려는 뜻보다 실용적인 이유가 큽니다. 이 작품들은 공간에 걸리는 것을 전제로 만듭니다. 호텔 로비, 매장, 사무실 벽. 그런 곳에는 이미 색이 충분히 많습니다. 여기에 색이 강한 화면을 하나 더 걸면 공간이 시끄러워집니다.
흑백은 어디에 걸어도 그 공간의 색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흐름과 밀도만 남습니다. 오래 걸어둘 것을 생각하면 그쪽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만드는가
작품 하나는 파이썬 코드와 파라미터 파일 한 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씨앗값(seed)을 포함해 모든 수치가 기록되어 있어서, 몇 년 뒤에도 같은 화면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판매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원본이 손상되거나 형식이 바뀌어도 다시 만들 수 있어야 소장하는 쪽에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소리도 직접 합성합니다. 음원을 사다 쓰지 않습니다. 저주파 드론과 물소리 계열의 노이즈를 코드로 만들어 화면과 같은 호흡으로 맞춥니다. 작품에 남의 권리가 섞이면 파는 쪽도 사는 쪽도 곤란해집니다.
실제로 벽에 걸렸을 때
화면 안에서 잘 보이는 것과 벽에 걸렸을 때 잘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영채(永彩)를 구미코에 설치하면서 그걸 확인했습니다. 모니터에서 좋아 보이던 밀도가 큰 화면에서는 답답했고, 반대로 여백이 많다고 걱정했던 부분이 실제로는 편안했습니다. 북구청 작업 때도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만들 때부터 16:9, 9:16, 25:9 세 가지 비율을 같이 생각합니다. 특히 25:9 같은 초광폭 화면에서는 시선이 좌우로 움직이는데, 흐름이 있는 작품은 그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받아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미디어아티스트라는 말이 아직 입에 붙지 않습니다. 7년 동안 영상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작품을 판다는 것도 여전히 어색합니다. 영상 제작은 견적을 내고 계약을 하고 납품을 하면 끝나는 일인데,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값이 얼마인지 스스로 정해야 하고, 그 값이 맞는지 계속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하려고 합니다. 72점을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은 만들기 전에 정해지는 게 아니라 만들고 나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다음 작품이 무슨 말을 할지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만듭니다.
작품은 visionpencil.co.kr/limited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각 작품은 1점만 판매하며, 판매된 작품은 목록에서 내려갑니다.





